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난 10일 "행자부도 인사쇄신(퇴출제)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불치하문'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을 빗대어 "지방에서 시작된 것이라 하더라도 좋은 것이라면 중앙정부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3진아웃제'를 기본 골격으로 한 퇴출제 도입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 중앙정부 인사개혁 필요성 대두 = 우리나라 정부조직은 대체로 `큰 정부'→`작은 정부'→`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면서 발전해 왔다. 개발과 성장 일변도 시대에는 큰 정부가 대세였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가 정착되면서 작은 정부가 우선시됐다. 이후 민간부문의 경쟁과 시장원리가 공공부문으로 확대되면서 효율적인 정부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19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4만8천명 정도의 공무원을 감축했다. 이어 참여정부는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했으나 늘어나는 행정수요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지난 4년간 공무원을 4만8천499명이나 늘렸다.
그러나 공무원 증원에 상응하는 행정의 효율성이 드러나지 않은데다 IMF 이후 사회 전반에 자리잡은 구조조정 파고에 따라 "공무원 조직만 퇴출제의 무풍지대로 남아있다"는 비판여론이 확산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민간부문은 IMF를 거치면서 혹독한 과정을 겪었던 반면 공직부문은 상대적으로 안정을 구가한데 대한 비판적 여론이 퇴출제를 촉발시키고 있는 계기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행자부 첫 시험대 = 지방자치단체에서 촉발된 공무원 퇴출제가 중앙정부로 전파된데는 박명재 장관의 발언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박 장관은 중앙부처내 주요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지난달 19일 "퇴출제가 추세라면 행자부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준비해야 한다"고 한데 이어 같은 달 23일에는 울산에서 "울산에서 시작된 인사쇄신 취지에 공감하며 행자부도 적극 반영하겠다"며 군불을 지폈다.
특히 박 장관은 "행자부는 물론 다른 중앙부처도 인사쇄신 제도를 자율적으로 반영하게 될 것"이라며 퇴출제가 전(全) 부처로 확산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후 서울시가 강도높은 퇴출제를 시행하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동조 움직임을 보이자 "중앙정부도 퇴출제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그러자 박 장관은 지난 10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퇴출제'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임기말을 맞아 공직기강을 확립하고 지자체에서 출발한 인사쇄신에 부응하기 위해 행자부도 인사쇄신을 적용하겠다"고 선언, 중앙부처로는 처음으로 퇴출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박 장관은 `재교육→재배치→직권면직'이라는 `3진아웃' 방식을 제안한 뒤 4월중 `선정.심사위원회'를 구성, 연말께 퇴출대상을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행자부에 국한된 것이지만 향후 성과에 따라 전체 공직사회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인사위 제도화 주목 = 박 장관의 구상이 공개된 뒤 권오룡 중앙인사위원장도 12일 "행자부가 인사쇄신 방안을 도입하기로 함에 따라 다른 부처도 인사쇄신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면서 퇴출제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그는 "행자부의 인사쇄신 결과가 구체적으로 나오고, 결과가 타당하다면 다른 부처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권 위원장은 인사위가 마련하고 있는 `성과평가 관대화 지수'에 언급, "누가 봐도 무능하고 실적이 저조해 퇴출돼야 할 사람이 퇴출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중앙 전부처 차원에서 퇴출제를 도입하겠다'는 직설적인 선언은 아니지만 퇴출제 효과에 버금가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관대화 지수란 `탁월-우수-보통-미흡-불량' 등 5단계로 구분된 고위공무원단 성과평가 지수 평가방식이 관대하게 흐르는 경향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공무원에 대한 절대평가가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보완장치다.
◇ 절대평가 상대화 관건 = 참여정부들어 처음으로 `공무원=철밥통'이라는 비판여론을 불식시킬 수 있는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의욕적으로 도입됐지만 시행 첫해부터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관대화 지수라는 보완장치를 마련하려는 것 자체가 그 반증이다.
따라서 일정비율을 강제할당하는 `마녀사냥식의 퇴출'은 지양돼야 하지만 공무원 인사평가에 상대적 요소를 가미해 경쟁원리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관계자는 "어떤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경쟁이 불가피한 상대적 요소가 접목되지 않으면 온정주의로 인해 경쟁과 효율성 제고는 물건너간다"고 꼬집었다.
다만 절대평가 방식에 상대평가적 요소를 도입해 경쟁과 효율성을 유발하되 재교육→재배치→재평가→직권면직과 같은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공무원들의 인권도 보장될 수 있다.
아울러 재교육에서 직권면직에 이르는 과정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인사평가위원회'같은 독립적 기구의 견제역할도 강화해야 인사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새겨둬야 한다.
이와 함께 이번 퇴출제 도입 논란을 계기로 행정수요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효율성을 표방한 참여정부들어 약 5만명에 달하는 적지 않은 수의 공무원이 증원됐다"면서 "퇴출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공직사회의 효율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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