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시작된 `무능공무원 퇴출제'가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를 거쳐 행자부 등 중앙부처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의 공직사회는 조직의 효율성과 대다수 공무원들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이러한 공무원 조직의 사회발전에 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과오가 없는 한 정년까지 보장되던 인사시스템으로 인해 `무사안일'과 `태만의 늪'에 머물러 있는 일부 공직자들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능력과 업적에 따라 평가받는 민간부분의 인사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공직사회도 `인사개혁의 무풍지대'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됐다.

울산을 시작으로 서울, 대구, 제주, 파주, 경남, 전북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휘몰아치고 있는 `무능.부적격 공무원 퇴출제'가 공직사회를 넘어 사회 전반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공무원의 신분 보장을 명문화한 국가공무원법이 1963년 제정된 이래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결코 깨질 수 없는 `철밥통'을 의미하는 단어로 인식돼 왔다.


그 철밥통이 `퇴출제'로 불리는 인사개혁에 의해 수십년 만에 깨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혁의 당사자인 공무원들의 상당수는 이 같은 퇴출제에 대한 강한 불만과 반감을 드러내고 있으나 모 언론사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사대상자(500명)의 68%가 퇴출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이 행정서비스의 수혜자인 국민들은 대체로 이 제도에 찬성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은 퇴출제에 대해 "당연한 제도 아니냐", "왜 이제야 시행하느냐"며 반기고 있는 실정이다.


공무원과 일반 국민의 인식의 괴리가 금년들어 퇴출제가 불거지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배경이라는 지적도 있다.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김정관(36)씨는 "민간기업이나 금융기관에서는 차장, 부장, 이사 등 위로 올라갈수록 극심한 경쟁을 겪고 그 과정에서 퇴출이 잇따르지만, 공무원들은 지금껏 이러한 경쟁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김씨의 말대로 19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공무원 사회는 `퇴출 무풍지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분야였다.


시중은행의 통.폐합으로 수천명의 은행원이 거리로 내몰리고, 대기업들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대규모 감원을 실시하는 등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 전반에서 구조조정의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변호사, 의사 등 `특권계층'으로 여겨지던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시합격생 1천명 시대'를 맞은 변호사나 개인병원 간의 극심한 경쟁을 겪는 의사들 중에서도 개인파산자가 속출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공무원 사회만은 예외였다.


지난해 말 현재 참여정부의 전체 공무원은 93만3천663명으로 국민의 정부에 비해 4만8천499명(5.67%)이 늘어나는 등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흐름과도 어긋난다.


IT(정보기술)의 발달로 업무효율성이 높아지고 1인당 노동생산성이 증가한다면 인원이 점차 감소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공무원 사회만은 그 반대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은 일선 현장에서의 나태함과 안일한 모습으로 이어졌던 게 사실이다.


민간기업에 근무하다 서울의 한 자치구청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K씨는 "지금의 구청 공무원 정원의 절반 아니 25%만 있더라도 전체 업무를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현재의 공직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상당수의 공무원들이 주어진 업무를 수동적으로 처리하면서 근무시간의 상당 부분을 인터넷 채팅이나 뉴스 읽기 등으로 때우고 있다는 게 K씨의 주장이다.


서울시가 지난 4일 현장시정추진단 선정 대상자를 발표하면서 밝힌 `퇴출 후보'들의 행태에는 업무 시간 중에도 음주를 일삼고 음주 후 상습적으로 여직원에게 불쾌감을 유발한 사례까지 있었다.


민원인이 자기를 무시한다며 싸움을 거는 직원, 단속업무를 하면서 3년간 적발 실적이 단 한 건도 없는 직원, 걸핏하면 동료들과의 불화나 갈등을 투서하는 직원 등 그 행태는 매우 다양했다.


결국 일부이긴 하지만 사회 전반의 경쟁과 개방 풍토에서 벗어나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업무 행태를 고집해 온 공무원 사회의 무사안일과 도덕적 해이가 `무능공무원 퇴출제'라는 철퇴를 자초한 셈이다.


이러한 퇴출제는 시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자치단체장이 시민들의 여론을 민감하게 살펴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됐다.


서울시 권영규 행정국장은 "무능공무원 퇴출제를 공무원들을 내쫓기 위한 제도로 바라보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해당 공무원들에게 자성의 기회를 주고 전체 공무원 사회의 능력과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기회'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