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제도 도입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민간아파트의 고분양가를 잡지 않고서는 서민의 꿈인 집값 안정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1998년 이후 지난 9년 간의 분양가 자율화 실험이 결국 일반 국민들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트 분양가 급등을 불러왔다는 반성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이번 1·11부동산 정책의 정부 입법안은 수차례 당정협의를 거치고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도 폭넓게 수렴해 공급 위축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보완장치를 마련했고, 분양가 급등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균형있게 반영한 방안이다.
아파트 분양가를 둘러싼 부동산정책의 역사도 이같은 고민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간아파트 분양가에 대한 첫 번째 규제는 1977년 8월 민간 아파트에 최고 가격제를 도입하면서부터였다. 이후 분양가 규제는 ‘시장원리’와 ‘집값 안정’이라는 두 가지 원칙 사이에서 규제와 자율을 되풀이해왔다.
특히 아파트가 전 국민의 주거형태로 각광받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 이후 분양가 자율화는 예외 없이 분양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가격이 비싸지면 수요가 줄어들어야 하지만, 제품이 만들어지기 전에 선분양하는 아파트는 이같은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공급이 부족하고 시중에 여유자금이 풍부하고 투기심리가 팽배한 상황에서는 분양가 자율화에 따른 고분양가는 더욱 가속화한다. 1970년대 말이 그랬고, 2000년대 초도 그랬다.
분양가 규제 여부는 당시 경기상황, 국민여론, 건설산업의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됐다.
◆ 1977년 최고가격제 도입
1977년 중동특수로 시중의 돈이 넘쳐나자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민간아파트 분양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당시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지방자치단체가 짓는 아파트보다 80~100%, 주택공사 아파트보다 40%, 한국감정원의 평가보다 100~150%나 높았다. 또 같은해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무려 30~60% 상승해 분양가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1963년부터 공공자금으로 짓는 아파트에 적용되던 최고가격제를 민간 아파트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당시 상한제는 월급 생활자가 5~7년 벌어 마련할 수 있는 금액 정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1980년대 초 원유 파동과 수출 감소 등으로 불황이 계속되자 주택건설업체의 어려움도 가중됐다. 주택경기를 활성화해야할 필요를 느낀 정부는 1981년 6월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에 이어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를 자율화했다. 그러자 아파트 분양가가 급상승하면서 이른바 ‘한신공영 충격’이 발생했다. 1981년 8월 한신공영은 68평형 등의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분양가를 자율화 조치 이전 분양가 상한선에서 22% 오른 평당 138만원(전용면적 기준 179만원)으로 정해버린 것이다. 이어 다른 건설사들도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당시 언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건설사들은 모임을 갖고 자율적인 규제를 하기로 약속했고, 정부도 주택경기 활성화를 위해 당분간 분양가 자율화를 고수키로 했다.
◆ 1983년 ‘분양가 상한제’ 재도입에서 1989년 ‘원가연동제’로
그러나 1982년을 전후해 부동산투기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당시 개포동 주공아파트에 복부인 등이 달라붙으면서 아파트값 8800만원에 프리미엄만 4500만원이 붙은 ‘개포 프리이엄’ 사건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당시 일류회사 고참 부장이 15년 근무한 뒤 받는 퇴직금이 2000만원 수준이었으니 서민들의 허탈감은 대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83년 신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재도입하면서 보완책으로 채권입찰제를 도입했다. 이때부터 전국 민간아파트의 분양가는 지역에 관계없이 평당 134만원으로 고정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평당 134만원의 한계가 나타났다. 건설사들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아파트 건설을 기피한 결과 1984~87년까지 매년 지어진 주택수는 최소 필요물량인 연간 35만 가구에 못 미치는 연간 22만 가구로 줄어들었다. 특히 1988년 5월 이후 7개월 동안 서울 지역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민간 아파트가 공급되지 않았다. 시중에는 3저 호황에 따른 국제수지 흑자로 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건설사들은 1989년 10월 ‘아파트 분양가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분당개발계획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정부를 위협했다. 당시는 주택 200만호 건설 사업을 위해 분당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200만호 건설사업을 위해 건설사들의 참여가 절실했던 정부는 결국 원가연동제라는 고육책을 내놓는다. 원가연동제란 아파트 분양가를 택지비와 건축비 등 원가에 연동시켜 정부가 통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분양가 상한제보다 완화된 제도이긴 하지만 가격을 통제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규제 중심 정책이었다. 원가연동제가 적용돼 첫 공급된 서울 쌍문동 한양아파트의 분양가는 평당 197만원이었다.
◆ 1998년 분양가 완전 자율화 실험
1990년대는 표준건축비 인상을 둘러싸고 거의 매년 정부와 업계 간 갈등이 반복했다. 원가연동제는 자율화로 가기 위한 과도기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1995년부터 단계적으로 자율화가 진행 중이던 분양가는 1998년 몰아닥친 IMF 외환위기로 인해 완전 자율화의 길로 접어든다. 당시 일자리 마련을 위해 추진된 주택경기 부양책이 대대적으로 시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양가 자율화는 1981년 때처럼 ‘고분양가→주변집값 상승→이를 바탕으로 한 고분양가’라는 연쇄반응으로 이어져 집값 급등을 초래했다. 1998년 이후 서울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1998년 512만원에서 지난해 1546만원으로, 8년 만에 3배 이상 급등했다. 분양가 평당 최고액은 1999년 6월 1072만원에서 지난해 3250만원, 올들어 1월 평당 3395만원으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분양가 규제의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 2007년 “상반된 요구 사이에서 합리적 대안 마련”
2004년 2월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상암단지의 분양원가를 공개하면서 분양원가 공개라는 새로운 주장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2003년 11월 분양한 서울 상암단지 40평형의 수익률은 39.2%(310억원)였다.
분양원가 공개 요구는 이후 ‘공공택지 내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원가연동제) 및 주요항목 부분공개’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5년 3월 공공택지 내 소형아파트에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됐고, 다음해 2월에는 공공택지 내 중대형 아파트로 확대됐다.
그리고 올 1월11일 수차례 당정협의와 각계 의견수렴 끝에 수도권과 지방 투기과열지구에서 민간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가 결정됐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와 분양원가 공개가 공급을 위축시켜 공급을 위축시켜 시장불안을 가중한다는 우려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민간택지 내 분양원가 공개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함으로써 이번 결정을 위해 상당한 고민과 진통을 겪었음을 내비쳤다. 권 부총리는 또 “부동산 전문가나 업계가 공급 위축 우려를 제기해 왔지만 일반 국민의 기대는 달랐다”며 “두 가지 상반된 요구 사이에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분양가 합리화는 건설업계-소비자 함께 사는 '윈-윈 게임'
과거와 달리 분양가상한제가 도입되더라도 공급은 크게 위축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에 도입하는 제도는 1970년대식의 획일적인 규제가 아닌 합리적인 원가연동제로 적정한 이윤이 포함돼 있다. 원가인상분만 제대로 반영된다면 민간 건설사의 동기유발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실수요자 중심의 청약가점제가 도입될 예정이기 때문에 투기수요가 끼어들 여지도 적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입되는 분양원가 공개는 정부와 업체, 수요자 사이의 신뢰 관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1998년 말부터 시작된 분양가 자율화 실험은 건설사 폭리와 집값 폭등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분양가 상한제를 다시 도입하고, 민간 아파트의 경우 비록 원가공개 항목은 적지만(7가지) 분양원가를 조금이라도 공개한다면 합리적인 분양가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태도는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분양가 합리화는 건설업계와 소비자가 함께 사는 '윈-윈 게임'이다.
byun121212@dau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