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현황과 실태는 어떠한가? 원인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 시급한가? 국내·외 유사사례 및 참고자료에는 무엇이 있는가? 협의가 필요한 관계부처는 어디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가? 갈등관리 방안은 무엇인가? 집행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과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정책을 내놓는 정부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모두 4단계에 걸쳐 크게는 19개, 작게는 65개의 질문에 충실하게 답변해야만 ‘완제품’으로서 국민 앞에 나설 자격을 주는 것이다. 시행중인 정책일지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리콜’해 문제점을 고쳐나간다. 지난 2005년 도입된 ‘정책품질관리’에 따른 변화이다
정책 발표전 사전점검 사항만 65개
지난 2003년 정부는 ‘세녹스 유사휘발유 사건’을 거치면서 정책실패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그 해답으로 나온 것이 정책품질관리였다. 꼼꼼한 사전 점검과 사후 관리로 ‘정책 불량률 0%’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시행중인 정책품질관리는 크게 두 가지이다. 정책의 입안 및 결정, 집행, 환류의 각 단계마다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나 거쳐야할 절차를 매뉴얼화하여 이를 점검하는 ‘정책관리카드’, 그리고 정책의 성공 및 실패 사례에 대한 학습을 통해 정책의 품질을 제고하는 ‘학습조직’ 활동이다. 앞서 던진 여러 질문들은 정책관리카드가 제시하는 점검 포인트들이다.
‘정책관리카드’를 통해 각 부처는 정책 수립 및 집행 등에 있어 보다 체계적인 준비를 하게 됐다.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을 사전에 제시·점검함으로써 정책 실패를 예방하는 것이다.
예컨대 재정경제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해외유수 외국병원 유치 사업’을 추진하면서 중국 상하이와 싱가폴의 외국병원 진출 사례, 병원 유치를 위한 국내·외 제도 현황 등을 분석하고, 유치에 부정적인 국내 의료인 및 시민단체들과의 갈등문제를 극복할 방안을 마련하면서 보다 종합적인 유치전략을 갖게 됐다.
노동부도 ‘국가기술자격제도 혁신 사업’을 추진하면서 매뉴얼대로 관련 집단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논의함으로써 효율적으로 갈등을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실패한 정책에서 성공의 요인 찾기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정책도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현재 정부는 이른바 ‘문제 정책’에 대한 별도의 관리 시스템을 가동중이다. 언론 보도나 외부 기관, 자체 분석 등을 통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정책을 골라 문제점을 분석하는 것이다. 발굴은 청와대, 분석 및 결과 보고 등은 국무조정실이 한다.
예컨대 무주택 서민들의 주택 구입 기회를 확대시킬 취지로 마련된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제도’는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세간의 집중 비판을 받았다. ‘두달 앞 못보는 정책에 수요자 당혹’(국민, ’06.1.13), ‘바꾸고 또 바꾸고 멀어지는 내집마련 꿈’(한겨레, ’06.2.22) 등의 언론비판도 잇따랐다.
정부는 이 정책을 ‘문제정책’으로 선정, 집중 분석했다. 결과는 특정계층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지원 계층을 명확히 설정하고, 정책 추진에 따른 시장충격을 고려한 면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대다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과열된 언론보도에 따른 수요증가 가능성 등을 고려, 사전에 충분한 홍보를 실시하여야 한다는 점도 시사점으로 남았다. 이 내용은 향후 유사정책 수립시 중요 고려사항으로 활용될 것이다.
2004년 11월부터 2006년 6월까지 국조실에서는 모두 26건의 정책을 분석했다. 김치파동과 불량 만두 사태, 양식어류 말라카이트 그린 검출, 아파트 발코니 구조변경 허용 및 월세 중개수수료 인상 등 대다수는 국민 실생활과 직결된 사안들이었다.
정책품질관리에 대한 공무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조실이 지난 2005년 12월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관리카드 활용을 통한 정책품질 개선효과에 3.11(5점 척도)을 주었으나, 2006년 6월에는 3.4를 줬다. 3.18이던 학습조직 활용에 따른 개선효과도 이듬해 3.36으로 올라갔다.
교육부에서 정책품질관리를 맡고 있는 배성근 기획총괄과장은 “부분적·단편적으로 정책을 관리하거나 실패원인에 대한 분석 및 결과 공유가 잘 되지 않는다면, 정책불량품 발생을 방지하기 어렵다”며 “정책품질관리의 최종목적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녹스 유사휘발유 사건이란?
지난 2003년 ‘세녹스’의 유사휘발유 여부를 놓고 정부-업체가 법적 분쟁을 벌였다. 정부는 관련 법조항(석유사업법 제26조)이 법적규제 대상인 유사휘발유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갖고 있지 못하고 산업자원부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던 점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판단, 이 사건을 대표적 정책실패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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