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하다.”

  경이롭다. 줄기와 가지는 말라 있지만 거기에 달려 있는 빨간 열매가 우뚝하다. 참빗살나무의 가지에서는 지난 여름의 열정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뜨거운 태양을 당당하게 받으면서 초록을 뽐내고 있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타오르는 힘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단지 남아 있는 열매가 그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참빗살나무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생각해본다. 물론 내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보낸 것은 아니다.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여 보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그 흔적을 고스란히 몸이 받고 있을 뿐이다. 그 것이 억울하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왜 그 결과는 나의 것이 된단 말인가.

  겨울 회문산을 찾는 길이었다. 산은 남부군의 근거지로서 이름을 날렸었지만 이제는 세월과 함께 많이 달라져 있다.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여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허전한데 그 전의 일은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음식을 기다리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회문산은 전북 순창군에 소재하고 있는 산이다. 지금은 휴양림으로 개발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7년 1월 21일에 찾은 휘문산은 잠을 자고 있는 듯 고요하였다. 산의 색깔이 전체적으로 침잠되어 있다. 산에서 느낄 수 있는 두 가지다. 하나는 쉼이고 다른 하나는 기다림이다.

  로버트 레인이 말한 ‘시간의 지문’이란 말이 떠오른다. 물론 그가 말한 시간의 지문이란 문화마다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 말을 나의 생활에 접목하여 생각해보았다. 생활의 패턴이 모이면 문화가 되는 것임으로 분명 나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지문이 존재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보낸 시간들을 분석해보았다.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따져보았다. 가장 먼저 나눌 수 있는 것은 바로 먹고 살기 위해서 보낸 시간들이다. 그리고 성취를 위하연 보낸 시간들이다. 이렇게 보낸 시간들은 물론 모두 나를 위한 시간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것은 인간관계적인 입장일 뿐이다. 순수하게 나 자신을 위해서 보낸 시간은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말라버린 가지 사이에서 빨강을 유지 하고 있는 참빗살나무 열매를 바라보면서 진정으로 나를 위해서 시간을 보내야 하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유한한 삶에서 그 것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은 시점에서, 자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관조할 때, 가능해질 수 있다. 나만의 시간 지문이 분명해질 수 있도록, 나를 위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