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2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국제사회는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라는 대북제재로 대응하였다.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에 맞서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 ‘6자회담은 필요 없게 되었다’를 발표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대화 중단, 상호 비방, 남북교류협력 단절을 넘어 한반도 평화의 근본적 문제인 북핵문제까지 폭발·표류하게 된 것이다.

8월 들어 북한의 대외·대남 정책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8월 4일 억류 중인 여기자 석방을 위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초청하고 김정일위원장과 대화하였다. 8.16일에는 방북 중인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이루어졌으며,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이산가족상봉 등 5개 사항을 합의하였다. 곧 이어 8.21에는 북이 작년 육로통행·체류를 제한한 ‘12·1조치’ 해제를 발표하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기간에는 조선노동당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통전부장을 ‘특사조문단’을 파견하여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기도 하였다.

북의 유화적 조치 배경

북한의 이 같은 유화적 조치 배경은 북한의 중·단기 국가목표인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만들기 위한 대내·외 환경조성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은 김정일-클린턴 대화, 보스워스 미 대북정책 대표의 초청 의사를 표명하여 북핵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 미국 또한 제재를 취하고 있지만 제재만으론 현실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모토로 2010년 3월 세계핵정상회의, 5월에는 NPT(핵무기 비확산체제)검토회의를 계획하고 있어, 북핵문제에 대한 진전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미국은 9월 11일 북미 양자대화 준비 의사를 표명하고 실무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안정적인 권력승계를 위한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북한에서는 지난 9월 원산의 협동농장에서 찍힌 선전포스터에서 확인된 것과 같이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작업이 진행 중이다. 북한은 ‘150일전투’와 ‘100일전투’라는 대중운동을 통해 경제난을 해결하고 후계자의 대중지도력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도 ‘갈등’보다는 ‘대화’를 통해 안정적·실리적 관리가 대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입장은 󰡔조선신보󰡕 9월 4일자 기사 “긴장완화를 지향한다면 북, 남, 미국의 엉클어진 이해관계를 풀고 서로 맞물리도록 하여야 한다”고 한 것을 통해서 관계개선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고집스럽게 ‘평론’만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헛발질’

북한의 변화를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는 ‘단호’해 보인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유화적 조치에 대해 ‘전술적 변화’라고 평가하면서,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남북관계 진전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변화에 대응한 정책을 구상하고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평론’하고 지켜보고 있는 정책당국자의 태도가 당황스러울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발짝 더 나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 21일 미국을 방문해서 느닷없이 ‘그랜드 바겐’을 제안해 국제사회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지만, 귀국 후 청와대 대변인은 3국간에 북핵문제 해법에 “접근방법이 약간 다르긴 했다”라고 브리핑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더나가 중국으로부터는 “남북한은 조상도 같은데 친하게 지내시죠”라는 부끄러운 말을 들을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같은 ‘헛발질’ 북핵해법 근원은 ‘비핵·개방·3000’구상에 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구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만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것, 즉 ‘선핵폐기’가 핵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그랜드 바겐’ 또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의 핵심부분을 폐기하면 동시에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을 한다는 주장이다.

비핵화의 최종단계인 핵심부분 폐기와 안전보장 등을 동시에 상정하는 것은 ‘선핵폐기’주장이다. ‘비핵·개방·3000’구상의 핵심인 ‘선핵폐기’는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무책임한 정책이다. ‘선핵폐기’의 가장 큰 맹점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구호로만 ‘선핵폐기’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즉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어떻게 북한의 핵을 폐기시키겠다는 것인지 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선핵폐기' 아집을 버리고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가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교류협력과 대북인도지원을 한 것을 두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2007년 상황을 잘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북핵문제는 9·19공동성명, 2·13합의를 토대로 동결-불능화-핵폐기 단계에 따라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관리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10.4선언’의 4항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합의한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즉 참여정부는 안정적 남북관계를 통해 6자회담의 촉진자 역할을 수행했으며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채 실질적인 해법은 제시 못하고 ‘선핵폐기’만 외치고 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 남북이 수해방지(10.14) 실무회담과 인도주의 문제 논의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10.16) 개최에 합의하였다.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가 온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실질적인 북핵문제 진전에 우리정부가 낄 틈이 없다. 이명박 정부에게 ‘선핵폐기’라는 아집을 버리고 북핵문제 해결과 대북 영향력 확대로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출처/김종수(민주당 정책위원회 심의위원/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