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사소통, 무엇이 문제인가?
성공적인 소통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진실, 온당, 진솔에 대하여

요즈음 우리사회에서 소통이 시대적 화두로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래 20여년이나 지나면서 민주화의 길을 걸어 왔는데 새삼 구시대적 권위주의 여론이 다시 등장하여 소통이 아닌 먹통으로 답답하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으니 이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보고 ‘국민과의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 이를 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후속 조치로 청와대에 ‘국민소통비서관’이라는 직책을 마련한 것을 보면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정책의지를 표명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인터넷 국민여론 등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한 것도 긍정적인 면이다.

그러나 정부는 진정으로 국민과 소통하려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게 문제다. 지난 4월 용산철거민 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청와대의 국민소통비서관은 강 아무개 연쇄 살인범사건을 이용하여 철거민 사망사건을 무마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경찰청에 보낸 소행이 드러났다. 그리고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대통령마저도 일방적인 라디오 연설만 계속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정부의 소통정책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인정 하겠는가 말이다.

정부는 소통의 기본원칙조차 모르는 듯하다. 소통의 기본 원리는 한 쪽의 정당성만을 일방적으로 내세우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무시하면 안 된다. 소통은 양쪽 주장의 정당성을 상호 인정하는 바탕에서 이뤄질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소수를 소통의 대상이 아닌 홍보의 대상쯤으로 간주한다면 정부의 소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소통에 성공하자면 상호이해를 위한 언어행위가 ‘진실해야’(true)하고, ‘온당해야’(right)하고, ‘진솔해야’(truthful) 한다는 이론이 있다. 독일의 소통이론가인 위르겐 하버마스가 제시한 명제이다. 그는 사실언어행위, 규범언어행위, 표현언어행위 등 세 가지 유형의 소통언어행위를 설명하면서 사실언어행위의 경우 ‘진실해야’하며, 규범언어행위의 경우 ‘온당해야’하고, 표현언어행위의 경우 ‘진솔해야’한다고 말한다. 이들 세 가지 언어행위는 각기 영역을 달리하지만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서로 변용되기도 한다.

이들 언어행위를 예시적으로 설명해 보자. 우리사회에서 늘 일어나는 노사 분쟁의 경우 사측이 노측을 향해 “당신들은 부당노동 행위를 하고 있소”라고 주장할 때 이는 사실언어행위이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진실’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다른 예로 사측이 노측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치자. “당신들이 협상 테이블로 나와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사도 노도 다 망합니다.” 이 언어행위는 규범언어행위이다. 이 언어행위가 소통되기 위해서는 ‘진실’이 문제가 아니라 이 말이 ‘온당’하냐 여부가 문제이다. 사측의 주장이 사실과 부합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규범이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표현언어행위는 사실언어행위나 규범언어행위와는 전혀 다르다. 예컨대 노사분규에 휘말린 사장이 “이 모든 사태가 나의 부덕의 소치로 악화한 것입니다. 내가 정중하게 사과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치자. 이는 표현언어행위이다. 그런데 이 언어행위가 소통되자면 사장이 사과한 말이 ‘진솔’하고 ‘성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노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이 글을 정리해 보자. 소통이 이루어지자면 언어행위가 담고 있는 ‘정당성 주장’(validity claim)을 상대방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자면 이 주장이 ‘진실해야’하고, ‘온당해야’할 뿐만 아니라 ‘진솔’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이 그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생긴다. 

지금 우리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에서 이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글쓴이 소개: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 법과대학과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정치언론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교수는 1965년부터 코리어 헤럴드의 기자 및 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교수 및 부총장을 지내고 현재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 외에도 방송위원회 위원장, 공익광고협의회 위원장, 한국언론학희 회장과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초대 회장 등을 지낸 바 있다.

주요저서로는 ‘분단국가의 언론정책’, ‘우리언론의 숨겨진 신화 깨기’, ‘전환기의 방송정책’,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커뮤니케이션’,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1권, 2권, 자료집)’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