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직원 초임삭감, 전 직원에 대한 임금반납 요구, 정원축소…… 현 정부의 공기업 경영효율화 방안이다. 경제위기 심화로 청년실업난이 가중되고 있는 속에서 지난 3월 18일 금융노조와 은행연합회는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위한 임금협상을 벌였지만, 금융공기업 및 국책금융기관장들의 반대로 결렬되고 말았다. 정부 지침에 따라 정원 축소를 해야 하는 마당에 신규인력 채용이 웬 말이며, 대졸 초임에 대해서도 10% 이상 무기한 삭감이 왜 무리한 요구냐는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와 고통 분담에 대한 진심은 날아가 버린 지 오래. 지금 정부는 유래 없는 세계경제위기를 맞아 국내경제의 회복을 위해 공기업 개혁,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이름의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감축, 대졸 초임 삭감, 청년인턴 채용이 왜 현 위기상황의 극복을 위한 개혁인지 설명도 없이, 정부는 이것이 ‘일자리 나누기’와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해고’와 ‘인턴’만이 난무하는 정부 정책의 악순환

올해 17대 은행연합회 노조위원장에 취임한 나승조 노조위원장 또한 정부의 이른바 임금삭감형 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비판의 말을 풀었다. “지금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은 급증하는 실업률을 임시적으로 막기 위한 미봉책일 뿐이다. 모름지기 정부의 정책이란 장기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보다 우리 경제회복 자체를 위한 정책이 마련돼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창출되게 해야 한다.” 경제가 위축됨으로 해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실효성 있는 경제회복책은 내놓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을 자르는 것만을 정책이라고 내세우고 있다면 경제는 누가 살려나간다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나눈다면서 겨우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것이 대졸 임금삭감이다. “새직원들은 이런 식으로 계속 삭감된 임금을 받게 될 것이고, 이런 식으로 급여체계는 갈수록 이원화될 수 밖에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만 해도 심각한 지금, 같은 정규직간에도 이러한 계층간의 위화감이 조성되기 시작하면 단순한 기업 문제를 넘어 사회 자체가 심각한 양극화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승조 은행연합회 위원장의 말은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도, 장래 한국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예상 충격 시나리오도 아니다. ‘인력 감축’, ‘대졸 초임 삭감’, ‘청년인턴 채용’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현 정부의 밑천 전부다. ‘구조조정을 위해 인력을 감축시킬 수 밖에 없다. 급증하는 실업을 줄이고 투자 활성화를 위해 그 자리에 다시 인력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이미 감축된 인력으로 사정이 어려워 신입들의 임금을 깎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신입들이라고 하는 것도 미숙한 사회초년의 청년 인턴들. 그들이 일을 배워 기업투자활동에 기여하기 위해 다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시나리오는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인력 감축. 그리고 다시 대 초임 삭감, 비정규직 채용.’ 나승조 위원장은 분명히 말한다. “겨우 들어와 일 년 일할 수 있다고 해도, 다시 언제 잘릴지 모른다.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되고, 결국 직원들은 모두 경영자들의 이익창출을 위한 도구로만 전락한다. 지금 정부의 일자리나누기라고 하는 제도는 결코 경제가 돌아갈 수 있게끔 하는 제도가 아니다.”

“작고 힘없는 조합이지만……”

전국은행연합회노조는 올해로 36년째를 맞고 있다. 현 노조위원장인 나승조 위원장은 은행연합회 전산개발팀(현 전산부)에서 처음으로 근무를 시작해 13대 노조 부위원장, 15대 노조위원장에 이어 현 17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예전에는 조합원들이 140~150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약 70여명이다. 조합원들이 탈퇴를 해서가 아니라, 은행 직원들의 2~30%가 비정규직으로 뽑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노조 또한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비정규직은 노조에 가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승조 위원장은 “지금 근로사항들이 대부분 정규직 위주로 돼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노조에 가입되기 힘들다”면서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어 복수노조를 만들거나 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경영자의 위임이 있어야만 한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나위원장은 “조직이 작다 보니 큰 변화는 없다”면서도 “그래도 복지부분에 대해 각 금융기관들의 수준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급여부분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했다.

지난 4월 1일 전국 은행은 근무시간을 현행보다 30분씩 앞당겨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 3하는데 합의했다. 5월 시행에 앞서 나승조 위원장은 “근무시간을 9시 30분에서 30분 앞당긴다고 해도 퇴근시간은 비슷하다. 실질적으로 업무가 끝난 후에도 6시 반에서 7시에 퇴근을 한다. 직원들이 업무를 더 많이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면서 “노동조합 입장에서 이 부분에 대한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며 이런 부분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을 말했다.

“이젠 사용자가 노조를 인식해야 할 때”

“부위원장 시절엔 결정권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당시는 지금 사회분위기와 많이 달랐다. 노조라는 자체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을 때라 지금처럼 서로간의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위원장인 지금, 결정의 갈림길에 섰을 때 가장 고민스럽고 고통스럽다”는 나승조 위원장. 매번 위기 때마다 생색내기·포퓰리즘 행정만 거듭 꺼내 보이고 있는 정부의 무능한 정책과 그럴 때마다 오르는 물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임금동결과 반납·삭감만을 능사로 아는 배부른 경영진의 방만 속에서, 나승조 은행연합회 위원장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다. “조합은 작고 힘이 없다. 이제 사용자가 우리의 존재를 인식해야만 한다.” 절박한 당부처럼 들리는 나승조 위원장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