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은 과연 대안인가 
이화여대 강철구교수

요사이 유한킴벌리 사장을 했던 문국현 씨의 인기가 매우 높다. 대선출마를 선언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3-4위를 달리고 있다. 사람들이 그를 경제를 아는 전문가이자 참신한 인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인기를 의식한 듯 그는 요사이 매우 자신만만한 행보를 보인다. 이미 자신을 중심으로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졌다고까지 주장할 정도이다.

그가 앞으로 유력한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그가 어떤 인물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좀 알 필요가 있다. 그가 비정규직 문제나 중소기업 문제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의 해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얼마 전에 <문국현 솔루션>이라는 책이 나왔으나 대선에 나오겠다는 사람의 정책을 알리는 책으로는 너무 부실하다. 어떤 이념을 갖고 있는지 어떤 정책을 왜 쓰겠다고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문국현과 관련해 세 가지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념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는 자신의 이념에 대해 계속 혼란스러운 발언을 해 왔다. 어떤 때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인 것처럼 주장한다. 어떤 때는 보수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원칙을 지키는 보수, 진보지향 보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편에서는 또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한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사실 그의 이념은 그의 말보다 행동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다. 그의 책이나 인터뷰 등을 보면 다보스 포럼 이야기나 피터 드러커, 앨빈 토플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특히 다보스 포럼에 참여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다보스 포럼은 무엇인가?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매년 열리는 다보스 포럼은 세계경제포럼이라고도 하는 다국적기업 경영자들의 모임이다. 학자나 정치인들도 일부 참석하나 1,000명 이상의 기업인들이 모여 그들의 기업 활동과 관련한 의제를 논의한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이다. 신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관철함으로써 자신들의 기업 활동에 아무런 제약도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보스 포럼은 세계화를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국제기구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사람이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 모임에 참석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문국현씨가 스승으로 모신다는 피터 드러커 같은 경영학자나 또 앨빈 토플러 같은 미래학자는 어떤가? 이들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지식기반경제를 국가 단위를 넘어선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 보고 있다. 그러니 그 제자인 문국현씨가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그는 보수우익의 인물이며 이명박씨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결코 진보적인 인물이 아니다. 이념적으로 혼란스러운 점에서 이명박씨보다 오히려 더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그의 정책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문제에 접근하는 비현실적인 태도이다. 그는 5년 안에 일자리 500만개를 만들고 경제 성장률 8%를 달성하겠다고 호언을 한다. 그렇게만 되면 더 이상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실현 가능성이다.

그는 고용을 33%에서 100%까지 늘려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자의 남는 시간을 평생학습에 돌리는 유한 킴벌리 모델에 따라 고용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주당 40시간, 연 2,000시간으로 줄이면 일자리 200만개가 생긴다고 하는 것이다.

또 특허, 디자인, 엔지니어링, 컨설팅, 교육 등 지식산업을 국산화하면 전문 서비스업 일자리가 200만개 더 생기며 여가문화 서비스 산업을 선진국형으로 육성하면 문화 부문에서도 150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일자리 500만개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선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늘린다고 하는 구상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자금 사정이 좋은 일부 기업의 경우에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하루하루 연명하는 데만도 허덕이고 있다. 실제로 60-70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작업장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들이 무슨 수로 고용을 33% 이상 늘이고 남는 시간에 평생학습을 시킨다는 말인가. 중소기업이 그 비용을 댈 수 없는 것은 분명한데 그러면 그것을 국가가 대야하나, 아니면 문국현씨 개인이 댈 것인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도 주 35시간 노동으로 줄였다가 지금은 40시간으로 늘리는 추세이다.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메르세데스 벤츠 같은 경쟁력 있는 회사까지도 노동시간을 늘리고 있다. 그런데 노동생산성이 훨씬 떨어지는 우리 중소기업에서 40시간 노동제를 정착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현재 자금사정이 훨씬 나은 우리 대기업의 경우도 40시간 노동제를 실시한 후 노동시간이 줄어들지도 고용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노동자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초과 수당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임금이 훨씬 적은 중소기업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독과점 업체로서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고, 외환위기 때에도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다국적 기업인 유한킴벌리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에는 그만큼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식산업이나 여가산업을 발전시키면 고용이 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지금도 그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나 지금 기술수준 등 우리의 여러 여건에서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지 단기간 안에 달성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단기간 내에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주장은 얼마나 순진하고 허황한 이야기인가. 게다가 기업의 성장과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를 믿는 사람이 하는 이런 주장에 얼마나 진실성이 있는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주장하는 '진짜 경제'는 그가 비판하는 '가짜 경제'일 가능성이 많다.

세 번째로 환경과 관련한 그의 주장이다. 숲가꾸기 운동을 한 것을 그는 매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나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기업 차원의 일이다. 삼림을 고갈시키는 업종의 성격상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것을 개인 이미지와 연결시키면 안 된다. 게다가 유한킴벌리에서 생산하는 1회용 기저귀는 과연 환경친화적인 상품인가? 한번 쓴 다음에는 태워야 하는 엄청난 공해상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한킴벌리는 환경산업이 아니라 공해산업을 영위한다고 할 수 있는 면도 있다. 그를 일방적으로 환경주의적인 '깨끗한' 인물로 생각하는 것이 오해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념과 관련된 것이다. 요즘 문국현씨가 갑자기 부상한 이유는 그가 서민을 생각하는 진보적인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 문국현씨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신자유주의자가 좌파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를 좌파에 속하는 진보적인 인물로 평가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의 결과이다.

나아가 그의 주된 성향인 보수적 이념과 관련 없이 약간 진보적으로 보이는 일부 정책만을 갖고 그를 지지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문국현은 이념을 넘어선 사람’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그의 지지자들도 있으나 그런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냉정을 잃은 태도이다. 좌파가 분배를 중시하고 우파가 그 반대라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정치의 퇴행성은 이념적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한 번 이념적 혼란에 빠져도 되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그가 집권하다면 정치적 혼란은 불문가지이다.

또 그 정책의 현실성 여부도 큰 문제이다. ‘사람 중심의 경제’라는 것도 말은 좋으나 현실화할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실제로 문국현 식의 박애주의적 해법을 주장한 사람들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프리에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포함하여 서양 기업가들 가운데에도 많다. 그러나 성공한 예는 한 번도 없다. 모든 기업가들이 그렇게 이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기업경영의 방식을 정부가 강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문국현씨는 이런 자신의 문제들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솔직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념적으로 얼버무리고 숫자놀음으로 대중을 현혹시키려는 이런 태도는 옳지도 않고 오래 갈 수도 없다.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국가경영은 훨씬 복잡하며 어설픈 미국 경영학자들의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

요사이 일부 진보 언론이 문국현을 이명박에 대한 대항마로 부각시키고 있으나 그전에 먼저 할 일은 문국현씨의 이념이나 정책을 정확하게 검증하는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외국자본의 이익을 대변해 와서 국익을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러운 사람을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언론의 정도가 아니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