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

  계절이 바꿔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산야의 모습이 온통 연초록이다. 한 구석을 꽉 틀어막고 있던 스트레스를 한 순간에 날려버린다. 싱그러운 색깔이 세상을 물들이게 되니, 그 속에 있는 나 자신도 연록이 된다. 물들여진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파란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봄꽃이 피어날 때에는 그 것대로의 화려함과 우뚝함이 있었다. 그러나 이파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세상은 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움이다. 서로 영역이 다르기에 단순 비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꽃은 꽃대로 가슴을 설레게 하고 연록이 창출해내는 멋은 그 것대로의 독특한 향으로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백양사 가는 길.

  국립공원이기도 하지만 고찰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입구에 우람하게 서 있는 비자 숲은 서식의 북방한계선이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가 있는 곳은 전통이 살아 있다. 옛 시대를 살아간 조상들의 숨결이 면면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읍 내장사 뒤편의 추령을 넘어 백양사로 향하였다. 초록의 이파리가 만들어내는 몸짓은 예술이었다. 연록도 그 색깔이 아주 다양하여 느낌이 모두 다르다. 색상이 차이가 나니, 배어나는 맛도 다르다. 연한 색깔에서는 풋풋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고 갈색에 가까운 이파리에서는 개구쟁이의 장난스러움이 넘쳐난다.

  연등이 달아져 있는 산사 가는 길을 걸어가노라니, 우주를 얻은 것 같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섬이 되어버린 현대인의 삭막한 영혼을 적셔주는 단비를 맞는 것 같다.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삭아진 영혼을 재생시켜주는 것 같았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산사의 고운 향이 영혼을 맑고 밝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백양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세월 따라 변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조금은 낯설다.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옛 모습과 다르니, 조금은 이상하다. 대웅전 앞에 서니,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대웅전 뒤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봉우리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옛날과 오늘을 비교해보는 즐거움도 컸다.

  달라지고 있는 절의 모습을 통해 환경에 적응해가는 노력을 생각한다.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고 안주하게 되면 발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 것에 좌절하지 않고 땀과 노력으로 적응하게 되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백양사의 변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씀바귀가 쓰다고 하여 맛을 보지 않는다면 그 참 맛은 영원히 알 수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들다고 하여 포기하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씀바귀는 쓴 맛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 속 맛은 달다. 실천하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행복은 없다.

  백양사의 변신을 바라보면서 살아 있음의 존귀함을 느낀다. 살아 있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살아 있지 않으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무엇인가를 더 원하기 전에 주어진 지금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알아야 할 때이다.

  싱그러운 연록 향에 취해 시간 가는 것을 잊었다. 산사의 멋에 푹 빠져버리니,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주어진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누릴 수 있게 되면 더 큰 삶의 기쁨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계절이다.<春城>